귀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수의사와의 면담도 ‘참을 인’ 세 개로 버텨야 하고, 도처에서 날아드는 독기어린 시선도 무참히 돌파해야 합니다. 사랑한다는 건 약점입니다. 사랑이 내 몸에 거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철저히 ‘을’이 되는 일입니다.
솜사탕 같던 시간도, 가슴 찢어질 듯 아픈 시간도 어느새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세상 어느 것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어서 먼 허공 어느 장소에 머물던 그 순간들이 메아리가 되어 이따금 말을 걸어오곤 합니다. 사랑하고 때로 토닥거리고 다시 낄낄거리며 맞부비던 그 날들이...
한때 육체를 지닌 채 치열하게 사랑하고 무언가 이루어내며 살아갔던 대상들. 골목길을 돌아설 때, 꽃잎이 후드득 떨어질 때, 계절이 바뀔 때, 이 공간 어느 서랍 속에 나프탈렌 냄새로 남아 있거나 PC 속 어느 폴더 안에 담겨 있을 그것들. 그리고 백 년 후에도 이 우주에 어떠한 에너지로 남아 있을 대상들을 나는 사랑합니다.
